외주에 대한 나의 경험과 기준
처음 외주를 받다 보면 내가 받아야 하는 가격을 말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시작은 SNS를 만들고 여러 주제의 앨범 커버 사이즈의 작업물들을 올려두고 홍보를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초기에는 포트폴리오 목적으로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여러 사람들의 앨범 커버를 만들어왔습니다. 의뢰인들은 대부분 이제 막 시장에 뛰어드는 작곡가나 음원을 내고자 하는 대학생,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받을 최소한의 페이를 정하고, 가격 책정에는 저만의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 의뢰인이 학생 혹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인 아티스트인가?
2. 금액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타협이 가능한가?
3. 소속사가 있는가?
4. 원하는 디자인의 레퍼런스를 보고 내 시간을 얼마나 소모할 것 같은가?
5. 금액을 정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기준을 잡고 가격을 협의했습니다. 제 기준은 작업물 하나에 최소 2~30만 원 시작이었고, 저렴하게 제공할 테니 주변에 홍보를 부탁한 경우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도 예쁜 디자인을 만들어 준 경우 실제로 의뢰인의 주변 지인들까지 고객이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앨범 커버 의뢰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외주를 맡길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따라서, 이 다섯 가지 기준을 통해 의뢰인과의 협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제 디자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외주 작업을 처음 시작해 보려 하고 가격을 책정할 때는 이와 같은 기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얻은 것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고, 제가 이것으로 얻고자 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요구(needs)와 실력 향상, 그리고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었습니다. 약 100개 이상의 앨범 커버를 제작했고, 마음이 맞았던 의뢰인과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앨범 커버 외에도 음원을 유통하기까지의 전후 과정에 대한 지식도 얻었고, 그것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실물 앨범(피지컬 앨범)을 만드는 방법과 굿즈들을 만드는 방법 등을 알아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느낀 점
제가 여러 사람들과 협업도 하고, 다른 소속사들의 외주도 받아보았지만, 결국 수입에 대한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큰 기업이나 소속사와의 협업은 분명 기존의 비용보다는 많이 받지만, 그런 외주의 특징은 그 안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잘 캐치해서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내 색이 아닌 의뢰한 사람이 원하는 작업물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협업과 외주에 지쳤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보여서 나를 팔아보자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상황
과장해서 말하자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저는 일당백(one-person army)이 되었고, 외주 비용은 전의 기준보다 3배 이상의 가격으로 책정하고 있습니다. 전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늘었고, 그 금액을 불러도 납득이 될 만큼의 작업물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앞으로도 더 노력하겠지만, 위에서 느꼈듯이 저는 외주로만 살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해 외주를 줄여나가는 중입니다.
여담
가끔 말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을 제시하는 의뢰인도 있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정말 돈이 없어서 음원을 꼭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지만, 대부분은 예산을 아끼고 마진을 높이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 앨범 커버를 만들어주세요. 그걸 활용해서 실물 앨범을 만들 건데 어차피 둘 다 앨범 커버가 들어가니 한 금액에 해주세요. 혹은 저렴하게 해주세요.
• 앨범 커버를 만들어주세요. 근데 이걸 활용해서 공연 포스터도 만들 건데 같은 디자인이니 그냥 사이즈만 맞춰주세요.
• 계속 당신한테만 의뢰를 할 테니 가격을 3분의 1 가격으로 해주세요.
• 내가 원하는 정가로 앨범 커버를 의뢰할 테니 하나는 공짜로 만들어주세요.
등등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요구는 꼭 입금 전에 이루어지더군요. 추가로 뭘 해달라는 것은 결국 일이고 최소 몇 시간에서 몇 일이 걸리지만, 의뢰하는 입장에선 겨우 하나 더 해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실물 앨범은 음반 제작사에서 받은 칼선 파일에 앨범 커버 외 또 다른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그냥 백지로 내고 싶다면 해주겠지만, 칼선 스펙에 따라 기본적으로 앨범 아트워크의 사이즈를 실물 앨범 커버 사이즈에 맞춰야 하고, 그 외에 부가적으로 가사지, 트랙리스트 추가, 앨범 커버와 이어지는 아트워크, CD 알판 디자인, 바코드나 리걸라인 추가 등이 필요합니다.
포스터도 그냥 A2나 A3 사이즈로 앨범 커버를 크기만 키워주면 되겠지만, 결국 공연 제목과 공연에 관한 부가적인 내용들 추가, 위치 수정, 각 예매 페이지 규격에 맞는 포스터 이미지 리사이징, 그리고 상세 페이지 제작 등이 필요합니다.
“별거 아닌데 그냥 해주세요”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라면 “이 정도는 그냥 해주는 거구나”하고 휘둘리게 될 것입니다. 의뢰인은 전에 이런 요구를 받아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도 이런 요청을 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야기를 조금만 나눠봐도 이런 의도가 보이니, 내 기준의 최소한의 금액도 줄 수 없는 의뢰인이 나타난다면 과감하게 거절하거나 금액 협상을 다시 하시면 되겠습니다. 시작 단계라 명성이 없는 것뿐이지, 의뢰인의 말에 상처받아 스스로를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낮추고, 내가 유명하지 않은 디자이너라고 과소평가하고 위축되면 앞으로도 그런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결국, 이 일에 가망이 없다고 착각하고 관두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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